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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함석지붕과 종탑, 그리고 나무십자가와 덮개 내려진 오르간이…고요속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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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실성당은 1895년 한국교회에서 11번째로 설립되었다. 성당 건물은 1923년 지어진 것이며 2003년에 성당과 구사제관은 경북도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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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실 성당의 내부. 왼쪽에는 오르간, 오른쪽에는 안나상, 중앙에는 나무 조각의 대형 십자가가 있다. 십자가가 있는 자리에 옛날에는 안나상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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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제관 뒤쪽에서 산으로 나 있는 '숲속의 십자가의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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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 사제관 외부 덧창에 있는 창문 고정용 걸쇠. 망가질 때마다 독일에서 새로 사온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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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시간이 고스란히…칠곡 왜관 가실성당
옛날, 마을의 이름은 가실이었다. 순 우리말로는 가을, 한자로는 아름다운 집이라는 뜻이다. 1895년, 마을에 있던 기와집 한 채가 성당이 되었다. 가실성당이다. 이후 일제 강점기 시절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마을의 이름은 낙산으로 바뀌었고, 성당의 이름도 덩달아 바뀌었다. 그리고 2005년, 성당은 옛 이름을 다시 찾았다. 마을 이름은 여전히 낙산이지만,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마을은 언제나 가실이듯 성당의 이름도 항상 가실이었다. 칠곡 왜관 낙동강 가에 가실이 있다.
◇…아름다운 집, 가실성당
가실성당이 세워진 때는 1922년, 원래 있던 기와집은 1784년에 이미 천주교 복음을 받아들인 실학자 성섭 가문의 집이었다. 성섭의 증손자인 성순교가 경신박해로 순교하자 그 집을 사들여 성당을 세웠다. 6·25전쟁 때 온 마을이 파괴되었지만 성당은 병원으로 쓰이면서 보존될 수 있었다. 성당 주변의 둥치 굵은 감나무와 벚나무들도 그렇게 살아남았다.
정면 중앙의 종탑에는 성당만큼이나 오래 된 종이 매달려 있고 거기에는 라틴어로 '사막의 아름다움은 꽃처럼 싹틀 것이다.'라 새겨져 있다. 종의 이름은 '안나', 안나는 마리아의 어머니다. 가실성당은 특이하게 예수의 외할머니인 안나를 주보성인으로 모신다. 성당 문은 소리 없이 묵직하게 열린다. 신발을 벗고 나무 바닥에 발을 딛자 차가운 기운이 천천히 몸으로 퍼진다. 정면에 커다란 나무십자가가, 왼쪽에 덮개 내려진 오르간이, 오른쪽에 안나 상이 고요 속에 있다. 이곳의 안나 상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것으로 1924년 이전에 프랑스에서 제작한 것이라 한다. 성체등은 제대 앞 천장에서부터 한 줄로 매달려 있고, 아직도 기름으로 불을 밝힌다.
반원형의 천장은 목재로 틀을 만들고 회반죽을 발랐다. 역시 긴 반원형의 창에는 신약성서에 나오는 마흔 가지 이야기가 스테인드글라스로 재현돼 있다. 그 옆에는 한자가 새겨진 오래된 나무액자가 걸려 있고 예수의 모습이 동양화로 그려져 있다. 액자는 100년 전 중국에서 들여온 것이고 그림은 동양화가인 손숙희씨가 '십자가의 길 14처'를 그린 것이다. 특정 종교를 가지지 않고,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라 여겨지는 성서를 읽어보진 않았지만, 성당 안에서는 늘 착하게 살아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고해실은 모른 체 지나치게 된다.
성당은 프랑스 사람인 프와넬(박도행, Victor Louis Poisnel)신부가 설계했다. 그는 서울 명동성당과 대구 계산성당은 물론 1896~1925년까지 30년간 한국의 거의 모든 교회 건축물을 설계한 인물이다. 그때는 벽돌 굽는 곳이 없었다. 이곳에 사용된 벽돌은 모두 현장에서 직접 구운 것들인데, 당시의 투르뇌(여동선, Vistor Tourneux)신부는 벽돌 한 장 한 장을 망치로 두드려 강도를 확인 하고 가장 좋은 것을 성당에, 중간 것은 사제관에, 안 좋은 것은 버렸다고 한다. 정직하게 지은 집, 한때의 불운에 단련된 집, 그것을 이어나가고 있는 집, 가실 성당의 아름다움은 그것에 있다.
◇…옛 사제관
성당 뒤 왼쪽에 오래된 사제관이 있다. 성당을 건립할때 같이 지어진 것으로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나무 기둥은 백두산에서 베어 압록강과 서해, 부산을 거쳐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온 것이다. 기둥은 지금도 건재하건만 붉은 벽돌들 군데군데는 삭고 부서졌다.
장방형 중앙의 문을 열면 아주 좁은 현관홀을 중심으로 좌우에 방이 있고, 정면에 지하와 지붕 밑 방으로 향하는 계단이 있다. 지금의 사제관이 지어지기 전 이곳은 교리실과 창고, 집무실, 침실로 쓰였고 지하에는 포도주를 보관했다. 교리실 안쪽에 있는 또 하나의 문을 열면 보물창고가 나온다. 가장 안쪽에 숨어있는 보물창고, 가실성당의 100년 역사를 보존하고 있는 전시실이다.
전시실에는 100년도 더 된 교적, 라틴어로 된 옛 성가집, 원시적인 포도 압착기, 1930년 초에 그려진 43장의 성서 그림, 성체를 만들던 숯 제빵기, 그리고 역대 본당신부님들의 사진까지 고스란히 남아있다. 사진속의 얼굴들은 모두 외국인이다. 지금 가실성당의 신부님도 독일 프랑크푸르트 출신이다. 한국에 온지 40년이 넘었고 이곳에서 거의 10년이다. 무엇일까. 고국을 떠나 이국에서 수십 년을 살게 하는 종교의 힘은?
옛 사제관을 나와 뒤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시선 하나가 발목을 잡는다. 돌아보자, 컹컹 짖는 성당지기 개 한 마리 뿐, 누구지? 아, 창의 덧문을 잡고 있는 한 여인, 쇠로 만들어진 여인의 토르소다. 단순히 장식과 덧문을 지지하는 용도이지만 처음 성당과 사제관이 지어질 때부터 달아놓은 것이라 한다. 망가진 것은 독일에서 똑같은 것을 구입해 와 최대한 원형을 보존하려 한다고.
◇…'숲속의 십자가의 길'
솔직히 멋없는, 새로운 사제관 뒤로 멋진 숲길 하나가 있다. 길에는 자그마하게 '숲 속의 십자가의 길'이란 표지가 달려있다. 굽이굽이진 길은 한참동안 낙엽수들이 내려놓은 가을빛 잎들 쌓인 숲을 헤치고 간다. 그러다 푸른 소나무 숲길이 되고, 나무 한그루에 묶어놓은 액자 하나를 발견한다. 성당에서 본 손숙희씨의 그림 14처 중의 하나다. 거기에는 '제 3처 가야할 길, 십자가의 길, 우리의 길'이라 적혀 있다. 십자가를 진 채 첫 번째 넘어진 곳이다. 그렇게 오르다 보면 언덕의 끝, 문득 지금껏 나는 몇 번이나 넘어졌나 헤아려 보게 된다.
예전에는 성당의 어느 곳에서든 넘실대는 낙동강이 보였으리라. 범람을 막기 위해 쌓은 제방이 먼저 풍경을 가두었고, 지금은 강물 달리듯 시원히 뻗은 도로를 내기위해 공사 중인 가림 벽들이 한 번 더 풍경을 차지한다. '숲속 십자가의 길' 언덕에서는 소나무 숲 사이로 언듯언듯 강의 조각들을 볼 수 있다. 높은 것들은 멀리에나 있고, 트인 시야 속에 너무 높지도 너무 낮지도 않은 성당의 빛바랜 석류색 함석지붕과 첨탑이 보인다. 종소리가 울렸으면 좋겠다 싶은 늦은 아침이었다.
#찾아가는 길
왜관IC에서 대구 방향으로 300m 정도 간 다음 왜관 지방 산업단지 쪽으로 우회전합니다. 계속 직진하면 막다른 삼거리가 나오고, 거기서 좌회전 해 약 2.7㎞ 정도 가면 가실(낙산)성당 안내판이 보입니다. 지금 도로 공사 중이라 표지판이 잘 보이지 않으니 유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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