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 2006년 8월 24일자 신문에 기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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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24일 부산일보 [내영혼의 쉼터-아름다운 성당] <9> 왜관 가실성당 ⊙
-단아한 정경에 안식이 깃든 순례자들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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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의 잔영이 온 누리에 깔려 있다.
현익현(본명 바로톨로메오·66) 신부는
2층 사제실의 현관 문을 열면서
"대기 덥지예(무척 덥지요)?"한다.
자연스럽게 밝은 표정에,정감이 묻어나는 목소리다.
한국말도 유창하다.
현 신부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출신이다.
그는 38년 전 성베네딕도 수도회 수도 사제로서 한국에 왔고,
가실성당에는 7년 전에 부임했다.
우리는 지금 경북 칠곡군 왜관읍 낙산리 가실성당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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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실성당은 1895년에 처음 생겼지만,현재의 건물은 1922~1923년 사이에 완공됐다.성당과 옛 사제관은 2003년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48호로 지정되었다.
권상우·하지원씨가 출연한 영화 '신부수업'을 아시는지? 이 영화의 무대가 바로 가실성당이다.
'가실'이란 이름은 마을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가실마을 사람들은 일제가 지은 낙산리란 행정지명 보다 가실마을
이란 전통적인 이름을 선호한다. '아름다운 집' 혹은 '아름다운 마을'이란 뜻의 '佳室'이란 한자어를 함께 쓰는 경우
가 있지만,기실 가실은 순 우리말이다.
성당의 이름은 가실에서 낙산(1956~2004)으로 바뀌었다가 지난해에 다시 가실로 복원됐다. 신부와 신자들은 '낙
산'보다 '가실'이란 단어가 훨씬 더 정겹고 아름답다고 여긴다. 성당의 아름다운 외관에 더 어울리는 이름 역시 낙
산보다는 가실이라 판단하고 있다.
그렇다면 가실성당은 아름다운가? 그렇다.
가실성당은 안내판을 못보면 쓰윽 지나쳐 버리기 십상인 한적한 시골마을의 야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왕복 2차
선 도로를 달리다 안내판을 발견하고 방향을 틀면 양편에 가로수들이 도열해 있다. 성당은 가로수 사이를 통과하
다 보면 느닷없이,문득 눈앞에 나타난다. 담은 없다.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성당 아래쪽 빈터 끝에 흙돌담이 죽 늘어
서 있지만 풀들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는다.
성당 일대에는 200년 가까이 됐다는 둘레 2.2m 짜리 감나무와 벚나무들이 여러 꽃들과 어우러져 운치를 더하고 있
다. 감나무 아래에는 설익은 감들이 몇 개 떨어져 뒹굴고 있고,감나무 가지 사이에는 까치가 정성들여 만들어 놓은
나뭇가지로 된 집이 있다.
성당의 건축양식을 살펴보면,아치의 로마네스크 양식과 뾰족 첨탑의 고딕 양식이 절충된 형태다. 프랑스인 신부가
설계했고 중국인 기술자들이 공사를 맡았다고 한다.
성당은 지상1층,지하1층 연건평 217㎡ 규모인데,하늘 향해 두 손을 모은 원추형 종탑이 성당 입구에서 손님과 신자
들을 맞는다. 성당의 지배적인 색조는 주황색이다. 조금씩 빛이 바랜 석류색 함석 지붕과 감색 벽돌들이 성당의 오
랜 이력을 증언하고 있다. 성당 뒤 옛 사제관의 감색 벽돌들 가운데 일부는 삭아서 부서지고 있는 중이다.
벽돌 이야기가 나왔으니 벽돌 이야기를 먼저 해 보자.
당시에는 벽돌을 굽는 곳이 없어서 현장에서 직접 벽돌을 구웠다. 성당 신축 당시의 프랑스 출신 본당 신부(여동
선,프랑스 이름 빅토르 투르뇌)는 망치로 일일이 벽돌을 두드려서 강도를 확인했다고 한다. 현 신부는 옛 사제관
의 삭은 벽돌들을 매만지면서 "여 신부님은 제일 좋은 벽돌들은 성당에 썼고,중간 것들은 사제관에 썼고,안좋은 것
들은 버렸다"고 전한다.
우리는 현 신부를 따라 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성당 정문 바로 앞 공중에 밧줄이 하나 매달려 있다. 종에 연결돼 있다는데 종탑이 낡아 직접 확인해 볼 수는 없다.
이 종은 성당의 나이만큼이나 오래됐다. 앞에서 말한 여 신부가 '안나'라는 이름을 붙여 봉헌했다고 한다.
안나? 안나는 예수의 할머니 즉,예수의 어머니인 성모마리아의 어머니이다. 가실 성당은 우리나라에서는 흔치 않
게 안나를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있다. 설계자인 프랑스 선교사의 영향 때문으로 보인다. 프랑스에서는 안나를 흠숭
하는 지역들이 더러 있다고 한다.
몇몇 기록을 보면 예수의 할아버지 요아킴과 안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안나를 공경하는 사람들은 예수의 어머
니를 반듯하게 키워냈다는 사실에 의미를 두고 있다. 안나는 흔히 '안나 성녀'라 불리며,특히 할머니 신자들이 선호
한다.
자료사진을 보니 안나가 성모마리아에게 경전을 읽히는 모습이 종 표면에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다. 이 '안나' 종
은 지금도 현 신부와 신자들의 팔힘을 빌려 가실마을 일원에 청아한 소리를 흘려 보내고 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안나 성녀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다. 성당 오른쪽 벽면 끝 부분에 안나 모녀상이 서 있다.
프랑스에서 70여년 전에 석고를 사용해서 만든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다. 모녀상의 안나는 50세 정도의 중
년이다. 안나는 40세때 외동딸을 얻었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겠다. 마리아는 10세 전후로 어려 보인다. 안나는 마리
아의 등에 왼손을 얹고 오른손으로는 경전을 펼쳐서 마리아에게 읽히고 있다. 다정다감하면서도 엄격해 보인다. 제
대로 된 어머니들의 모습은 세상 어디에서나 다 저러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세로로 길쭉한 10개의 창문들에는 신약성서에 나오는 마흔 가지 이야기가 색유리화(스테인드글라스)로 재현돼 있
다. 독일인 에기노 바이네르트씨가 그린 것인데,선이 사실적이면서 또한 암시적이다.
두 번째 유리화에는 '헤롯왕의 명령으로 군인들이 전국의 아기들을 죽이다-어린 예수가 나자렛의 집에서 목수 일
을 배우다-어린 예수가 성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다-성인이 된 예수가 요르단강에서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다'하
는 것들이 그려져 있다.
현 신부는 이 유리화들 중에서도 여덟번째 유리화의 한 장면을 특히 좋아한다. 예수가 사형언도를 받는 장면이다.
"예수님의 저 표정이 맘에 듭니다. 엄청난 충격 앞에서도 당당하고 담담하잖아요. 눈도 그 분의 지혜에 걸맞게 깊
고."
그러나 동양화가 손숙희씨가 그린 예수의 표정은 조금 처연한 느낌을 준다. 성당 안에는 손씨가 그린 '십자가의 길
14처'가 있다. 그중 1처가 사형언도를 받는 예수의 얼굴이다. 이 예수의 얼굴에서는 여러 갈래의 인간적인 고뇌가
읽힌다. 1처의 예수는 눈을 감은 채 입을 꼭 다물고 있다. 죄 짓는 세상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실망과 낙담이 그의 얼
굴에서는 묻어 나오는 듯하다.
어느 표정의 예수를 선호하든,그것은 개인의 성정과 가치관이 지향하는 바에 달려 있을 텐데,그리하여 스스로에게
물어본다,나는 어느 쪽을 더 선호하고 있는가?
현 신부가 기꺼워 하는 유리화는 하나가 더 있다. 성당 안에는 3개의 출입구가 나 있고,그 위에 각각 반달형 유리화
가 조성돼 있다. '착한 목자 비유'(요한복음 10장,11~18절)'잃었던 아들 비유'(루가복음 15장 11~32절)'씨뿌리는
사람 비유'(마태오복음 13장 1~9절) 등이다. 현 신부는 이 중에서 '잃었던 아들 비유'를 묘사한 유리화를 가리키면
서 "이 비유는 매우 중요합니다. 가톨릭 교리의 핵심 즉,'사랑'이 바로 이런 거거든요"라고 말한다. '잃어버린 아들
비유'는 흔히 '탕자의 비유'로 알려져 있다. 탕자로 떠돌던 아들이 마침내 뉘우치고 돌아와 벌을 청하자 아버지는
기뻐하며 그를 위해 잔치를 베푼다는 내용이다.
그리하여 아름다운 성당에서 우리는 자문한다. 너희들은 돌아온 탕자를 따뜻하게 맞이할 수 있는가? 너희들은 너
희에게 잘못한 이들을 넉넉하게 품에 안을 수 있는가?
사진 설명:
사제관 옆에 한 일자(一) 형의 오래된 단층 건물이 서 있다. 옛날 사제관이다. 지금은 전시실로 쓰이고 있다.
현익현 신부가 보기에도 묵직한 구리 열쇠를 꺼내드는데 성당의 나이만큼은 된 듯 보인다. 나무 문을 밀자 삐거덕
소리가 난다. 동화에나 나올 법한 '비밀의 정원'으로 들어서는 듯한 느낌이다.
방은 두 개다. 사람이 살지 않는데도 마룻바닥이 반들거린다. 빛바랜 선풍기 하나가 보인다. 20~30년 전 모델로
서 'GOLD STAR(금성)' 상표를 달고 있다. 스위치를 눌러 보니 신형 선풍기 부럽잖게 잘 돌아간다. 주인의 품성을
알겠다.
다른 방으로 간다. 성당의 유물들이 보관,전시돼 있다. 대부분 외국인들인 역대 본당 신부들의 사진이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다. 방안을 살펴보니 마치 보물창고같다. 유리장 속에는 100년된 가실성당의 교적(신자 등록부)이 전시
돼 있다.
원시적인 포도압착기도 보인다. 원통 안에 포도를 넣고 압착판을 꾹 누르면 통 옆에 뚫어놓은 틈들 사이로 포도즙
이 흘러나오는 방식이다. 선교사들은 이 포도즙을 발효시켜 미사때 '예수의 피(포도주)'로 사용했을 것이다.
밍크 본이란 화가가 1929년에서 1937년 사이에 그렸다는 43장의 성서 그림이 특히 눈길을 잡는다. 창세기에서 최후
의 심판까지를 담고 있으며,크기는 신문만 하다. 아담과 이브가 뱀에게 꼬임을 받아 선악과를 따 먹은 뒤 하느님으
로부터 질책을 받는 내용의 그림이 보인다. 문맹자들이 적지 않았던 시절에 선교사들은 이처럼 그림을 통해서 교리
를 설명하곤 했다. 가실마을의 신자들이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이 그림들을 보면서 천주교와 천주교의 교리를 이해
하려 애쓰는 모습을 그려본다. 그런데,현 신부는 아담과 이브가 벌거벗은 게 마뜩찮은 모양이다. 이건 좀…,한다.
그도 선악과를 따먹은 것일까?
한편 현 신부는 얼마 전 한 영화감독이 가실성당을 화면에 담고 싶다고 했을 때 정중히 거절한 사실이 있다. 현 신
부는 "가톨릭 재단 학교에 다니는 학생의 성장기를 다룬 내용이었는데,등장인물인 신부의 언행과 주인공 학생이
도박사가 된다는 설정이 맘에 들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그러나 영화 '신부수업' 제작진에게는 촬영을 허락했다. 주인공이 시골 신부의 일상적인 종교적 삶에서 감화
를 받는다는 내용이 맘에 들었다고 한다. 현 신부는 그 시골 신부가 자신의 모습과 비슷하다 여겼던 것일까? 아닌
게 아니라 현 신부는 호감이 가는 인물이다. 이광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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