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Contact us

찬미예수님

Welcome

가실성당안내서

주일강론
주보
색유리화
복음말씀 > 주일강론
작성자
작성일
2016-04-17 (20:13:14)
글제목
2016년 4월 17일 부활 제4주일 (“가만히 있으라.”는 목소리)
오늘 복음은 우리를 착한 목자에로 초대합니다. 착한 목자는 자신의 목소리로 양들을 부르며 생명으로 인도합니
다. 목자의 목소리는 양들을 살게 하는 거룩한 부르심이란 의미로 성소입니다. 마치 화답송처럼 ‘우리는 당신 목장
의 양떼’가 연상되는 평화로운 광경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소주일이면서 착한 목자의 주일 혹은 ‘선목주일’이라
부릅니다. 특별히 우리 교구의 신학교나 모든 학교의 목표가 바로 착한 목자, 바로 선목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이 당신을 목자로 비유하셨다는 것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어느 신
부님이 오늘 복음에 나온 것처럼 과연 양들과 목자가 그러한지 직접 보고 싶어 이스라엘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
곳의 목초지는 평상시에는 괜찮다가, 우기가 되어 비만 오면 커다란 강이 되어 위험한 지역이 됩니다. 그래서 비가
조금이라도 오면 언덕위의 동굴로 빨리 피신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동굴 속으로 피하다보면, 그 지역의 여러 목자
들과 양들로 뒤섞이게 되고, 아주 난리법석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신부님이 목자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당신들
의 양을 구분할 수 있습니까?” 목자들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비가 그치면 알게 될 것입니다.” 

비가 그치자 목자들이 하나 둘 떠가기 시작합니다. 모든 목자가 각각 자신의 노래나 신호를 보내자, 놀랍게도 양들
이 자기 목자의 소리를 듣고 따라갑니다. 그 신부님이 하도 신기해서 그 노래를 열심히 배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노래를 하며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단 한 마리도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신부님은 오늘 복음처럼, 목자는 자기 양을 알아보고, 양은 자기 목자의 목소리를 분명히 알고 있다고 확신했다고
합니다. 

저도 이스라엘과 근동지방에서 지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양떼들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아주 무더
운 날씨인데 수북하게 털로 뒤덮인 양들이 서로 서로 붙어서, 그것도 떼를 지어 뭉쳐 있었기 때문입니다. 너무 답
답할 정도로 붙어 있는 모습이 오히려 제가 더 답답할 지경입니다. 그런데 저를 안내하던 형제가 오히려 추운 겨울
에는 같이 있지 않고 서로 떨어져 지내려고 애쓴다고 합니다. 저는 속으로 더울 때에 이웃이나 가족들을 못 살게
하려고 붙어있고, 추울 때 더 춥게 하려고 서로 떨어지는 것이, 너무나 못된 동물이라고 웃었습니다. ‘어떻게 그렇
게 심술궂을까’라고 생각하는데, 옆의 형제가 양털이 다른 털보다 온도가 낮기 때문에 더울 때는 시원하게 하려고
붙어 있고, 겨울에는 오히려 더 춥기 때문에 떨어져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여름에 서로 붙
어있는 것이 참으로 답답하게 보입니다.

게다가 양은 사랑스럽고 유순하다고 생각하지만 어떻게 보면 어둔한 동물입니다. 방향 감각이 없어 쉽게 길을 잃
고, 일단 길을 잃은 양은 대게 혼란과 공포에 사로잡힌 채 한 장소만 빙빙 돈다고 합니다. 독이 있든 없든 아무 것
이나 잘 먹고, 어느 한 곳에서 풀을 다 먹은 후에 다른 풀밭을 스스로 찾아가지 못하고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그곳의 풀뿌리까지 계속 뜯어대다가, 결국 그마저도 동이 나면 그 자리에서 굶어죽는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양들은 스스로 방어할 능력이 없습니다. 맹수가 공격해 오면 양들은 달아나기는커녕 한데 뭉쳐있다 더
욱 쉽게 먹이가 됩니다. 털이 무성하게 자란 양이 벌렁 넘어지게 되면 혼자 힘으로 다시 일어나기 어려워, 제때 일
으키지 않으면, 한참 버둥대다가 죽고 만다고 합니다. 양들을 함부로 대하면 금방 의지를 잃고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마치 양들의 침묵이란 영화처럼, 침묵하며 죽음을 선택한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양처럼 가련한 동물이 없
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도저히 세상을 살아갈 힘이 없는 불쌍하고 그야말로 착한 목자만을 오로지 바라보는 그
런 동물입니다.

가실의 형제자매 여러분, 어쩌면, 하느님의 눈에는 우리 가실이나 여러분들이 바로 그런 양들처럼 보여 질지 모르
겠습니다. 오늘 주님은 당신의 양들이 당신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고 합니다. 양들이 목자의 소리를 알아듣지 못
하면, 그것은 스스로 죽겠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착한 목자는 자기 양들에 대해서 누구보다 더
잘 안다고 합니다.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며, 상처 난 곳을 만져주고, 어딘가 불편하다고 여겨지는 양에게 더 많은
사랑으로 보살피고 어루만져 줍니다. 이것뿐이 아닙니다. 양들이 위험에 노출되었을 때, 자신의 안전은 생각지 않
고, 위험을 무릎 쓰고 양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착한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따라야지만, 비로소 위험에서 벗어나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
다. 반드시 양은 목자의 소리를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목자의 소리에 모든 것을 포
기하고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맘 때가 되면, 자주 들리는 소리가 있습니다. “더 이상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소리입니다. 2
년 전에 제주도로 가던 배 안에서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그 소리 때문에 300 여명의 목숨이 사라졌습
니다. 그리고 진짜로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정부는 지금까지 유족과 국민들에게 “우리가 다 해 줄 테니, 제발 좀
가만히 있으라.”고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착한 목자의 소리를 듣고 따라가면, 분명히 양들은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나쁜 목자는
우리를 죽음의 골짜기나 멸망의 바다로 나아가게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제 착한 목자의 소
리를 분명히 알아듣고 따라갈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시대는 재물과 권력의 거짓 목자를 만들어 우리를 따라오라
고 정말 밑도 끝도 없이 따라오게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결국 “가만히 있으라.”는 말과 함께 도망치는 승무
원, 우왕좌왕하는 해경, 책임을 넘기는 정부, 진실에 침묵한 언론들이 정말 나쁜 목자를 따라가는 사람들처럼 보입
니다. 그들의 눈에는 정말 학생들이, 유족들이 그리고 국민들이 눈에 보이지 않고 그들이 섬기는 재물과 권력의 우
상만 보이는 모양입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그들의 소리는 분명히 양들을 살리는 소리가 아닙니다. 양들을 죽음
의 골짜기로 몰아 놓는 소리였습니다.

지금 우리 세상은 사람을 살리는 참된 목소리에 목말라 합니다. 우리를 죽게 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을 살리는 참된
부르심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우리를 참된 생명으로 부르시는 착한 목자의 소리가 바로 우리 시대의 참된 진리
의 외침이 되어야 합니다. 양들이 착한 목자의 소리를 듣고 따라야지 겨우 살아갈 수 있듯이, 우리 가실도 바로 그
러해야 합니다. 부디 여러분이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따라가는 거룩한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2016.04.19(12:30:47) 수정 삭제
어떤 부르심인지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과거에 있었더라면 좋았을걸 그랬습니다.
▼▲ 암호 이름 이메일
메모남기기

답변 수정 삭제

리스트




 

천주교 가실성당 : [718-801] 경북 칠곡군 왜관읍 낙산리 614번지   전화 : 054) 976-1102   FAX : 054) 977-7020

Copyright ⓒ 천주교 가실성당. All rights reserved.
Contact Webmaster for more information. Mail to Webmaster, gasil@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