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주님수난 성지주일입니다. 이제 우리는 오늘부터 주님의 거룩한 시간을 통해 우리의 거룩한 시간으로 나아
가게 됩니다. 주님의 거룩한 시간인 성주간은 주님의 마지막 한 주간으로 우리는 주님과 함께 우리의 구원여정을
다시 한 번 새겨보면서, 우리의 미천한 삶이 더욱 거룩한 삶이 될 수 있는 은총의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예전부터 오늘을 성지주일 혹은 수난주일이라고도 부르듯이, 오늘은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 기념과 주님의 수난을
기념하는 두 개의 예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 개의 복음을 나누어 듣게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2개의 복음을 통해 당시의 군중들과 똑같은 입장에서 주님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그때의 군중처럼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열광적으로 환영의 말을 하면서 동시에 수난복음을 통해 그때의 군중처럼 우리의 입에서 죽음의
말이 나왔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군중들의 모습이, 그 장소와 외치는 소리가 다르지만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더욱 더 비참한 사실은 우리 또한 그 군중들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처럼 우리는 내 자신에게 유리하고
마음에 맞으면, 언제나 두 손 들어 환영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에 불리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외면하
거나 때론 저주까지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오늘처럼 하느님을 찬미하다가 금방 하느님을 죽이라고 외치는 저주
는 그렇게 이상하고 놀랄만한 일이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들이 바로 너무나 쉽게 거룩도 하다가, 너무나 쉽게 우리
의 입에서 욕설과 모함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몰고 갔던 수많은 사람들 안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분명히 그들 가운데 우리의 죄스럽고 나약한 모습을 쉽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런 나약함과 죄 때문에 바로 하느님의 거룩함과 구원으로 나아갈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렇
게 죄스럽고 나약한 인간이기에 우리의 하느님은 수난하고 죽으셨습니다. 결국 하느님의 죽음은 우리를 구원의 길
로 나아갈 수 있게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죄스런 나약함이야말로 저주받은 축복처럼 보이지만, 참으로 너무나
놀랍고도 축복받은 우리 죄의 은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의 죽음의 신비를 배워야 합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 하느님이 죽어야 했고
못난 죄인을 살리기 위해선 하느님이신 분이 죽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세상을 살리고 구원하는 생명의 길
이었습니다.
우리도 가실과 이웃을 위해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 우리도 이웃을 위해 죽고 하느님을 위해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성주간은 하느님만의 죽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죽음을 묵상하는 시기이기도 합
니다. 하느님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 죽음을 묵상하고 또 하느님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우리 부활을 희망하는 거룩
한 시기입니다. 하느님은 결코 죽으실 분이 아니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결국 죽음으로 끝장날 것이 아닙니다. 오
늘 하느님의 죽음이 그것을 보여 주십니다.
이제 우리는 하느님이 가셨던 십자가의 길로 들어가는 거룩한 성주간을 맞습니다. 우리의 십자가의 길은 결코 어
리석고 수치스러운 길이 아니라는 사실이 오늘의 수난성지주일은 여러분에게 증언합니다. 이제 성주간을 통해 여
러분도 여러분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십자가를 잘 따라가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성주간이
여러분에게 은총과 축복의 거룩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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